통제감이라는 착각이 재테크를 흐린다
불확실성의 시대다.
금리는 오락가락하고, 부동산 시장은 어디가 바닥인지 감조차 안 오고,
주식이나 코인은 뉴스 하나에 요동친다.
이럴 때일수록 ‘안전하게 가자’는 말이 힘을 얻는다.
하지만 곰곰이 들여다보면, 그 ‘안전한 선택’이 진짜 안전한 건지도 애매하다.
많은 사람들이 말한다.
“나는 리스크를 못 견뎌서 그냥 예·적금 들어.”
“차라리 손해를 보더라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자산이 좋아.”
이런 판단들이 진짜 합리적이기만 할까?
사실 이 안에는 ‘불확실성 회피’라는 심리 작용과
‘통제감 착각’이라는 심리적 보상 구조가 숨어 있다.
오늘은 이 두 가지 개념이
우리가 하는 재테크 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,
그리고 이런 심리가 어떻게 우리의 돈을 ‘잠재적 손실’로 이끄는지를 이야기해보려 한다.
1. 불확실성이 불러오는 심리적 공황: 수익보다 예측이 중요한 사람들
사람들은 손해를 싫어한다.
하지만 흥미롭게도 ‘예상 가능한 손해’는 꽤 잘 견딘다.
예를 들어,
월세 80만 원씩 빠져나가는 건 이해한다.
하지만 주식이 하루 만에 10만 원 빠지면 그건 못 견딘다.
이게 왜 그럴까?
바로 ‘통제 가능한 손해’와 ‘예측 불가 손해’가 뇌에 다르게 작용하기 때문이다.
행동경제학에서는 이를 **‘불확실성 회피(ambiguity aversion)’**라고 부른다.
사람은 손해 자체보다도,
“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 자체”에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느낀다.
그래서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품보다는
확실히 이자가 낮더라도 예·적금이나 정기보험처럼
‘결과가 정해져 있는 금융상품’을 선호한다.
문제는, 지금 같은 고물가·저성장 시대에
**예측 가능한 손실은 사실상 ‘확정된 실질 자산 감소’**라는 점이다.
연 2% 이자를 받아도, 물가가 4% 오르면
그 돈의 가치는 사실상 줄어든다.
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
“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”이 주는 불편함 때문에
결국 수익 가능성이 있는 자산을 회피하는 판단을 하게 된다.
그 판단은 나를 안심시켜줄지 몰라도,
결국 장기적으로는 자산을 갉아먹는다.
2. 통제감이라는 심리적 착각: 나는 안전하게 ‘조절하고’ 있다는 믿음
재테크에서 흥미로운 현상 중 하나는
사람들이 ‘내가 통제하고 있다’는 느낌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.
실제로 수익률보다 더 강한 영향을 미치는 건
‘내가 선택했고, 내가 결정했다’는 감정이다.
예를 들어,
ETF는 위험할 것 같아도 금 투자 골드바는 괜찮다고 느끼는 사람.
비슷한 수익률을 줘도, **‘눈에 보이는 실물’**이 있다는 이유로 마음이 놓인다.
이건 단순히 실물이 좋다거나 ETF가 어렵다는 문제가 아니다.
‘보이느냐’와 ‘내가 직접 움직일 수 있느냐’가 마음의 통제감을 만든다.
그런데 이 통제감은 많은 경우
실제 통제 능력과는 무관한 심리적 착각에 가깝다.
자산은 어떤 형태든 결국 외부 상황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.
실물 금도 가격이 떨어질 수 있고,
부동산도 공실이나 세금 이슈로 흔들릴 수 있다.
하지만 우리는 ‘내 손으로 샀다’, ‘내가 결정했다’는 감각만으로
그 자산이 마치 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것처럼 느끼게 된다.
이 감정이 계속되면, 우리는
데이터나 분석이 아닌 감정과 통제감을 기준으로 투자 결정을 하게 된다.
결국 수익률이나 위험도보다
‘내가 조절하고 있는 것 같다’는 심리적 보상에 의존하게 되는 셈이다.
이게 바로 통제감 착각의 핵심이다.
3. 불확실성 속에서 중심 잡는 법: 감정에서 구조로 이동하기
그렇다면 이런 심리적 왜곡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?
단순히 “감정에 휘둘리지 말자”는 말로는 부족하다.
오히려 우리는 그 감정 자체를 인정하고,
그 위에 ‘구조’를 덧입히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다.
✅ 감정은 인정하되 기준은 숫자로
"이건 감정적 결정이야"라고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해소된다.
그 위에서 수익률, 리스크 지수, 과거 데이터 등을 통해
객관화된 숫자 기준을 붙여보자.
감정은 주관적이지만, 판단 기준은 ‘정해놓으면 변하지 않는다.’
✅ 통제감 대신 분산이라는 ‘진짜 안정감’
하나의 자산에 몰입하면 마음이 편할 수 있다.
하지만 진짜 통제는 다양한 자산에 나눠서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다.
이때 핵심은 ‘내가 다 알아야 한다’는 압박에서 벗어나는 것.
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 자체가
내가 모든 걸 예측하려는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준다.
✅ 재테크의 목표는 ‘예측’이 아니라 ‘지속’
우리는 자꾸 “어디에 넣으면 얼마 벌까?”에만 집중한다.
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계속 투자할 수 있는 구조다.
그 구조를 만드는 건 감정이 아니라 습관이고,
그 습관은 일관된 전략과 실행에서 비롯된다.
마무리하며
요즘처럼 시장이 뒤숭숭할 때,
사람들은 ‘불안하니까 확실한 걸로 간다’는 말에 쉽게 끌린다.
하지만 그 확실함이라는 건, 실은 내 감정을 잠깐 달래주는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.
진짜 문제는 ‘돈을 어디에 넣느냐’가 아니라,
**‘나는 왜 그 결정을 하고 있느냐’**다.
그 결정이 감정 때문인지, 구조 때문인지에 따라
10년 뒤의 자산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된다.
통제감은 환상일 수 있다.
하지만 감정 너머의 판단 기준과 실행 습관은
우리를 불확실성 속에서도 중심을 잡게 해준다.
재테크의 핵심은 ‘불안을 없애는 것’이 아니라,
그 불안을 이해하고 동행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.